*** 한결 가벼워진 옷차림의 런더너들로(Londoner) 북적거리는 거리는 활기를 띠었다. 어느새 바람은 시원하게 불며 하늘 높이 뜬 태양은 조금씩 뜨거워지고 있었다. 한 낮의 그늘과 공원 분수대를 찾아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6월의 한복판이었다. “어디, 어디 가고 싶어요?” 수업이 끝난 복도를 걷다 채민이 칸 이라고 부른 사람을 향해 손을 흔...
[가족]이란 단어는 소헌의 가슴속에 응어리진 분노와 애증의 돌덩이와 비슷했다. 어릴 적부터 차곡차곡 쌓여온 우울한 기억들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제대로 풀지 못한 채 흉터처럼 남아, 이제는 말하는 것조차 지치고 의미 없는 넋두리 같이 느껴져서 사람과의 관계 속에 머물수록 자물쇠를 채우고 꼭꼭 숨겨두었다. 공원에서 채민에게 불쑥 속내를 털어놓은 건 충동적이기...
소헌도 제 엉덩이 아래에서 느껴지는 부피감을 알아챘지만, 슬쩍 몸을 떼며 잔잔한 웃음만 지어 보였다. 채민은 그것이 에둘러 거절임을 알아채고 목덜미에 고개를 푹 숙인 채 탄식만 흘려보냈다. 소헌은 들썩이는 커다란 등을 토닥거리며 말했다. “어제도 했잖아.” 그러자 축 늘어진 눈썹 아래 안광만 번득이는 호랑이 한 마리가 뾰로통하게 대꾸했다. “누가 그런 걸 ...
유령이라도 튀어나올 듯한 어둠이 깃든 음침한 펍 내부는 평일 저녁 맥주 한 잔으로 허기를 달래는 이들로 복작복작했다. […캐서린 있잖아. 인터 선생. 출산 때문에 바뀐다는 데 누구려나?] [텝 있잖아, 태국에서 온 애. 괜찮치 않냐?] 오늘도 어김없이 소헌의 곁에서 늦게까지 치대려던 계획이 실패한 채민은 친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는 하우스 메이트 몇 명과 근...
정말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다. 보수적인 것 같으면서 한편으론 상상도 못할 만치 적극적이었다. 새벽까지 관계를 가질 때도 힘들다면서 엉덩이를 흔들고 조이면서 터질 것 같다느니 너무 크다며 울고불고, 그런데 또 그게 얼마나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소헌이 아니라 제가 터지는 줄로만 알았다. 소헌은 고개를 돌리고 큭큭거렸다. 채민의 패턴을 이미 눈치챈 지도 ...
“하아.” 영민은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던 이불을 휙 들추고 한숨을 푹푹 쉬다가 어이없어 피식피식 웃기를 반복했다. 쉐어룸이긴 해도 집에 친구를 초대하는 걸 마다하는 성격도 아니다. 대부분 나이대도 비슷해서 어울리기도 쉬웠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하기에 더욱 상관없었다. “아, 씹. 그래도 너무하네.” 하지만 이건 아니지. 아니, 그래. 솔직히 어젯밤에...
*** 블라인드의 촘촘한 틈새로 빛이 조금씩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비가 내린 후 아침은 상쾌한 숨 속에 섞인 물비린내 냄새로 가득했다. 어제보다 더 푸른 잎을 갈아입은 나무들과 싱그러운 꽃들 사이 새들의 활기찬 지저귐에도 런던의 공기는 아직 차갑다. 그러나 여름은 금방 찾아올 것이고 더는 몸을 움츠릴 필요가 없을 것이다. 조심히 방문을 여닫은 채민이 욕실...
사나래=사도화 쓰고 싶은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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