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구슬려 가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으나 반짝이는 소헌을 눈빛을 본 순간, 채민의 머릿속은 이번 주말에 있던 약속들이 모래성처럼 무너져갔다. [어. 사람 많으면 좋지 않아?] 방금까지 뚱해 있던 사람이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대꾸한다. [난 상관없어.] [나도, 괜찮아.] [그래요. 아싸, 신난다!] 윤희의 순수한 감탄이 쏟아지며 바스에 가면 무엇을 할지...
[헬로우 가이즈. 인터미디어트 수업을 담당하게 된 윌리엄입니다.] 작고 귀엽게 생긴 교사가 들뜬 목소리로 인사를 전했다.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은데 목소리만은 활기찬 이질적인 모습에 소헌은 사람 사는 건 똑같구나 싶어 잔잔한 마음을 숨겼다. [자, 그럼. 각자 옆자리에 앉은 친구들과 인사도 하면서 대화를 이어가 봅시다.] 교사의 말에 교실에 있는 학생들은...
꾹. “하아. 고만해라.” 아무리 째려봐도 채민은 자신의 손가락이 형님의 볼살을 꾹, 꾹 누르는 걸 멈추지 못했다. “이거 제 의지 아니에요. 얘 인공지능인가 봐.” 제 검지를 요리조리 흔들면서 하는 주정이 퍽 한심해 보였지만, 소헌은 고개만 내저었다. 기숙사로 오자마자 편하게 먹자는 소헌의 제안에 둘 다 깨끗하게 샤워를 마치고 침대 위에 간단한 술상을 차...
“메일 왔어요?” “어.” 소헌은 어색한 영어 주소가 적힌 계약서를 꼼꼼히 확인했다. 건물은 오래되지 않은 4층짜리 플랏(Flat)이였다. 승강기가 없어 짐을 옮기기에는 불편할 것 같았지만, 방 컨디션은 본 것 중에 제일 괜찮았다. 특히 소헌이 묶는 곳은 원래 거실인데 방으로 꾸민 공간이라 넓었다. “가격대는 어때요?” “음. 예상 범위보다 조금 비싸...
*** [좋은 아침, 소헌. 어제 잘 쉬었어?] [아, 키겐 안녕. 응. 콜록. 너는? 아, 카오루 안녕.] [안녕, 소헌.] [어제 정말 덕분에 즐거웠어.] [아, 나도 소헌. 재미있었어.] [다들 어제 어디 갔던 거야?] [응. 소헌이 런던 근처 소개해줬어.] [그래? 다음에는 나도 끼워 줘.] [아, 카를로스. 물론이지. 이따 점심 같이 먹을까?] [...
내 이럴 줄 알았지. 채민은 내심 뿌듯함과 흐뭇함이 공존하는 자신의 탁월한 안목에 혀를 내둘렀다. 저한테는 허리길이인데 소헌이 입으니 엉덩이 아래까지 내려와서 둥실둥실한게 딱 자신이 좋아하는 귀여운 모습이다. 쇼핑을 즐기는 것 같지는 않지만, 런던에도 스파 브랜드는 많으니 한 번 데리고 가볼까. 이것저것 자신이 고른 옷을 입혀보는 상상을 하던 채민이 이번에...
*** “미친 새끼.” 채민은 채팅방에서 낄낄거리는 시릴의 텍스트를 보며 욕을 내뱉었다. 근처에 앉아 있던 사람이 흘끔거렸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모국어로 실컷 욕을 하며 거칠게 머리를 쓸어 넘겼다. 햇살이 잘 드는 카페 테라스에서 그의 그림자만 유독 찌그러져 보인다. -[3D나 디자이너 쪽은 소개해 줄 수 있어. 그런데 여기서 사업 할 거 아니면 한국까지 ...
[특별히 할 거 없으면 공원에서 점심 먹고 걸어가 볼래?]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다. 기숙사에 잠깐 들렸다가 계단으로 식당에 가던 중, 1층 승강기 앞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키겐과 카오루를 만났다. 그래도 아는 얼굴이라 모른 척 하긴 뭐해서 인사를 나누다 조금 길어졌고 그들이 어디 갈까 고민 중이라는 대화에 끼어들게 되었다. [여기서 좀 만 걸어가...
며칠 째 무단결석 중이라...... 아침에 나올 때 굳게 닫힌 기숙사 방문을 보며 무슨 일이 있나 걱정은 되었지만, 선뜻 먼저 안부를 묻지 않은 건 아주 조금은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었다. [이런 채민한테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죠?] [아닐 걸요. 어제 완전 술에 쩔었던데.] 농담처럼 빈정거리는 시릴의 대답에 열댓 명의 학생들이 모인 좁은 교실 안에 작은 ...
채민은 진심이었고, 사람에게 직접 이렇게 느껴본 건 처음이었다. “형, 저는 그게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자기감정에 솔직할 수 있다는 거요.” 그 순간, 소헌의 머릿속에 애써 묻어 두었던 파편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소헌아, 난 그게 대단하다고 생각해. 너처럼 자신의 감정에 솔직할 수 있다는 거.- 하지만 소헌의 눈앞에는 현실과 채민이 있었다. 그는 몰래...
“형, 잠깐만요.” 수업을 마치고 잽싸게 멀어지려는 소헌을 옆구리에 끼고 나왔으나, 마침 채민에게 아는체하는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그는 덩치 좋은 무리 사이에서도 머리 하나는 불쑥 튀어나온 거대한 나무 같아서 저절로 눈에 띄었다. [민, 우리 이따 피카디리 가서 점심 먹을 건데, 갈래?] 채민을 올려다보느라 고개를 빳빳이 든 여학생이 예쁘게 생글 웃고 있...
얘나 저나 영어 실력은 도긴개긴이었다. 배운 문법에 맞춘 짤막한 문장에는 더 많은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는 답답함이 느껴졌다. 그러나 채민에게는 이로써 일단락되었을 뿐, 채팅 창을 나와 그가 향한 곳은 최근 통화 목록이었다. [누구 기다려?] 옆에 있던 녀석이 계속 휴대폰만 보는 채민에게 능글맞게 묻는다. [아니.] 그의 대답을 흘려보낸 녀석...
사나래=사도화 쓰고 싶은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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